1. 서론
중화란 특정 음운 환경에서 음소 간의 대립이 실현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음운론적 관점 및 중화 환경에서 두 음소는 음성적으로 동일하게 실현된다고 가정되며, 이는 완전한 중화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음운론적 중화가 음성학적으로 완전한 중화인지 불완전한 중화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다(Blumstein, 1991; Dinnsen, 1985). 이러한 논의는 주로 독일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네덜란드어, 카탈루냐어, 터키어 등 여러 언어에서 종성 위치의 유성 장애음이 무성음화(Devoicing)되는 현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Charles-Luce, 1985; Dinnsen & Charles-Luce, 1984; Fourakis & Iverson, 1984; Jassem & Richter, 1989; Kharlamov, 2014, 2015; Kopkalli-Yavuz, 1993; Piroth & Janker, 2004; Port & O’Dell, 1985; Slowiaczek & Dinnsen, 1985; Warner et al., 2004).
선행 연구에 따르면, 일부 언어에서는 완전한 중화가, 다른 언어에서는 불완전한 중화가 보고되었다. 완전한 중화를 보이는 언어로는 터키어와 일부 폴란드어 연구가 있다. Kopkalli-Yavuz(1993)에 따르면, 터키어 파열음은 중화 환경에서는 파열음의 선행 모음 길이, 폐쇄 구간 내 유성 구간 길이, 폐쇄 구간 길이, 기식 구간 길이 등 모든 음향 매개변수에서 유성음과 무성음 간 차이가 사라졌으며, 지각 실험(두 대안 강제 선택, two-alternative forced choice, 2AFC)에서도 유성음과 무성음 간 정답률 차이가 나타나지 않아 완전한 중화가 확인되었다. Jassem & Richter(1989)의 폴란드어 연구에서도 파열음, 마찰음, 파찰음의 선행 모음 길이, 자음 길이, 파열 구간 길이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으나, 지각 실험에서는 무성음 응답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반면, 불완전한 중화를 보이는 언어로는 독일어, 러시아어, 카탈루냐어, 네덜란드어, 영어 등이 있다. Dinnsen & Charles-Luce(1984)의 카탈루냐어 연구에서는 파열음을 분석한 결과, 일부 화자에서 선행 모음 길이 또는 폐쇄 구간 길이의 유의미한 차이가 관찰되었다. 독일어의 경우, Port & O’Dell(1985)은 파열음에서 선행 모음 길이(무성음<유성음, 15 ms), 폐쇄 구간 내 유성 구간 길이(무성음<유성음, 5 ms), 기식 구간 길이(무성음>유성음, 15 ms)의 유의미한 차이를 보고하였으며, 지각 실험(2AFC)에서는 정답률이 59%로, 우연 수준(50%)보다는 높았으나 확실한 변별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다. Charles-Luce(1985)도 파열음과 마찰음을 분석하였는데, 마찰음에서는 선행 모음 길이(/s/</z/, 10 ms)에서, 파열음에서는 폐쇄 구간 내 유성 구간 길이(/t/</d/, 5 ms)에서 차이가 나타났다. Piroth & Janker(2004)에 따르면, 마찰음에서는 완전한 중화가 나타난 반면, 파열음에서는 종성 길이의 차이가 관찰되었다. Slowiaczek & Dinnsen(1985)의 폴란드어 연구에서는 Jassem & Richter(1989)와 달리 파열음, 마찰음, 파찰음에서 선행 모음 길이의 차이가 나타났으며, 양순 파열음에서는 폐쇄 구간 내 유성 구간 길이에서도 차이가 관찰되었다. Warner et al.(2004)의 네덜란드어 연구에서는 파열음 /t/와 /d/의 선행 모음 길이와 장모음 환경에서 파열 구간 길이에서 차이가 나타났으며, 지각 실험(2AFC)에서는 청자가 우연 수준 이상으로 두 음소를 변별하였다. 영어의 경우, Braver(2011, 2014)는 모음 사이에서 파열음 /t/와 /d/가 탄설음(Flapping)으로 중화되는 환경을 분석한 결과, 선행 모음 길이(/t/</d/, 5.69–8.76 ms)에서 차이가 나타났으나, 지각 실험(2AFC)에서는 영어 모어 청자들이 두 음소를 변별하지 못하였다.
한편, 중화 양상은 발화 과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Fourakis & Iverson(1984)은 독일어 장애음을 대상으로 동사 활용 자극을 사용한 유도 발화 과제(elicitation task)와 읽기 과제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유도 발화 과제에서는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으나 읽기에서는 일부 화자에서 선행 모음 길이와 폐쇄 구간 길이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관찰되었다. 이들은 이러한 결과를 읽기 과제라는 인위적 실험 환경에서 화자가 철자 정보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과잉 교정(hypercorrection)으로 해석하였다. Kharlamov(2014, 2015)의 러시아어 연구에서도 구두 과제와 읽기 과제를 비교하였다. 두 과제에서 마찰음의 마찰 구간 길이(무성음>유성음, 8–13 ms)에서 차이가 나타났으며, 파열음에서는 폐쇄 구간 길이(무성음>유성음, 7 ms)와 파열 구간 길이(무성음>유성음, 5–6 ms)에서 차이가 관찰되었다. 읽기 과제에서는 성대 진동 횟수(무성음<유성음, 1.9–3.8 cycles)에서도 유의미한 차이가 관찰되었다. 지각 실험(2AFC)에서는 중화 환경에서 러시아 모어 청자들이 파열음과 마찰음 자극을 들었을 때, 유성음 응답률이 약 42.4%–44%로 나타나 무성음 응답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중화 현상의 연구에서 발화 과제의 통제가 중요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선행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Dinnsen(1985)은 산출과 지각 결과에 따라 중화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첫째, 표준적 중화(standard neutralization)는 산출과 지각 모두에서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이다. 둘째, 제한적 중화(limited neutralization)는 산출에서는 미세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지각에서는 변별되지 않는 경우이다. 셋째, 비중화(non-neutralization)는 산출과 지각 모두 차이가 나타나는 경우이다. 넷째, 불가능한 중화(impossible neutralization)는 산출에서는 차이가 없으나 지각에서만 차이가 나타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 유형은 실험적으로 어떤 언어에서도 관찰된 바가 없다. 이러한 분류는 중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출뿐만 아니라 지각 실험이 함께 수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한국어에서도 종성 위치에서 중화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어 파열음은 조음 위치에 따라 양순음 /p, pʰ, pˈ/, 치조음 /t, tʰ, tˈ/, 연구개음 /k, kʰ, kˈ/로 분류되며, 조음 방법에 따라 평음, 격음, 경음으로 구분된다. 이들 파열음은 종성 위치에 따라 미파(unreleased)로 실현되어 각각 [p˺], [t˺], [k˺]로 중화된다(Cha & Sock, 2025; Kim, 1979; Kim-Renaud, 1986; Lee, 2016; Martin, 1951). 예를 들어, ‘입 /ip/’과 ‘잎 /ipʰ/’은 종성 위치에서 모두 [ip˺]으로 실현되어 음성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한국어 종성 중화에 관한 선행 연구는 상반된 결과를 보고하였다. Kim & Jongman(1996)은 음향 및 지각 실험을 통해 한국어 종성 장애음 /t, tʰ, s/의 완전한 중화를 주장하였다. 이들은 선행 모음 길이와 폐쇄 구간 길이에서 /t, tʰ, s/ 간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지각 실험에서도 한국어 모어 청자들이 세 범주를 변별하지 못하였다고 보고하였다. 반면에, Lee(2016)는 음향 분석 결과 일부 조건에서 불완전한 중화의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Lee(2016)에 따르면, 질의 응답(question-and-answer, Q&A)에서 선행 모음 길이와 폐쇄 구간 내 유성 구간 길이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관찰되었으며, 읽기에서는 음향적 묵음 구간 길이에서 차이가 나타났다. 그러나 지각 실험(2AFC)에서는 청자들이 두 범주를 변별하지 못하여 완전한 중화가 나타났다.
최근 Cha & Sock(2025)은 중화 환경에서 /aC/ 음절(모음 /ㅏ/ + 자음)을 대상으로 발화 속도(보통, 빠름)에 따른 음향 분석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양순음은 선행 모음 길이, 종성 길이, 성대 진동 종료 시간(voice termination time, VTT), 음향적 묵음 구간 길이 등 모든 매개변수에서 발화 속도에 관계없이 완전한 중화를 보였다. 반면, 치조음에서는 보통 속도에서는 VTT, 빠른 속도에서는 선행 모음 길이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연구개음에서는 보통 속도에서 종성 길이, VTT, 음향적 묵음 구간 길이에서 차이가 나타났으나, 빠른 속도에서는 선행 모음 길이에서만 차이가 유지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어 파열음 종성 중화가 조음 위치와 발화 속도에 따라 다르게 실현됨을 시사한다.
기존 연구들은 몇 가지 한계를 지닌다. 첫째, 대부분의 연구가 음향적 차원에 한정되어 있으며, 공기역학적 차원을 포함한 연구는 부족하다. 한편, 한국어 파열음은 초성 위치에서 발성 유형에 따라 공기역학적 매개변수의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구강 내 압력은 평음이 격음과 경음보다 낮게 실현되며(Cho et al., 2002; Choi & Choi, 2014; Dart, 1987; Kim, 1965), 구강 호기(呼氣, exhalation) 기류량은 격음이 가장 높고, 경음이 가장 낮은 것으로 보고되었다(Cho et al., 2002; Choi & Choi, 2014; Dart, 1987). 그러나 종성 중화 환경에서 이러한 공기역학적 차이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실험적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Kim(1998)에 따르면, 종성 파열음의 파열(release)과 미파(unreleased)는 구강 폐쇄가 아닌 공기역학적 기제와 관련이 있으므로, 중화 환경에서 종성 파열음의 산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기역학적 매개변수의 분석이 필요하다.
둘째, 발화 과제(Q&A vs 읽기)에 따른 중화 양상의 차이를 추가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독일어(Fourakis & Iverson, 1984)와 러시아어(Kharlamov, 2014, 2015) 연구에서는 발화 과제에 따라 중화 양상이 다르게 나타났다. 한국어에서는 Lee(2016)가 발화 과제에 따른 비교를 시도하였으나, 발화 속도에 따른 효과는 검토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어에서도 발화 과제에 따른 효과를 추가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산출과 지각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분석한 연구가 부족하다. Kim & Jongman(1996)과 Lee(2016)가 산출과 지각 실험을 함께 수행하였으나, 발화 과제나 조음 위치 등 실험 조건에 따라 산출에서 관찰된 차이가 지각에 어떻게 반영되는지에 대한 분석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어 파열음 종성의 중화 현상을 음향, 공기역학, 지각의 세 차원에서 다양한 실험적 요인(발화 과제, 발화 속도, 조음 위치)에 따른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다양한 발화 과제(Q&A와 읽기)와 발화 속도(보통 속도와 빠른 속도)에 따른 중화 양상을 살펴보고, 산출과 지각 간의 관계를 검토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어 파열음 종성은 음향 및 공기역학적 수준에서 완전한 중화를 보이는가?
둘째, 발화 과제(Q&A와 읽기)와 발화 속도(보통 속도, 빠른 속도)에 따라 중화 양상이 달라지는가?
셋째, 산출에서 관찰된 차이는 지각에서도 반영되는가?
2. 연구 방법
음향 실험에서는 성도에 질환이나 병력이 없는 건강한 한국어 모어 화자 16명이 참여하였다. 실험 참가자들은 20–39세로 구성되었으며, 모두 서울 출생의 서울 방언 화자였다. 녹음은 2021년 1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음성학·문헌학·언어학 연구소(Université de Strasbourg, Institut de Phonétique, de Philologie et de Linguistique)의 무향실에서 진행되었다. 일부 참가자는 서울 또는 파리에 거주하여 방음 처리된 공간에서 녹음하였으며, 이 경우 공명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녹음 공간을 신중하게 선정하였다. 실험 참가자는 마이크로부터 약 15cm 거리에 편안하게 앉아 발화하였으며, 반복과 과제를 포함한 전체 녹음 시간은 3시간이었다. 각 과제가 끝날 때마다 휴식을 취하였고, 필요시 추가 휴식을 허용하였다. 녹음 장비는 디지털 녹음기(Zoom H8)와 지향성 마이크(Sennheiser e835s)를 사용하였으며, 표본 추출률은 44 kHz, wav 형식, 모노 채널로 설정하였다.
본 연구의 음향 실험은 중화 환경에서 나타나는 한국어 파열음 종성을 대상으로 하였다. 파열음을 조음 위치에 따라 양순음, 치조음, 연구개음으로 분류하였으며, 각 범주에서 평음과 격음 또는 경음의 대립을 보이는 최소 대립쌍을 선정하였다. 다만, 연구개음의 경우, 종성 위치에서 평음 /k/와 격음 /kʰ/의 최소 대립쌍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평음 /k/와 경음 /kˈ/의 대립쌍을 선정하였다. 구체적인 목표 자극은 표 1과 같다. 방해 자극으로는 ‘곰 /kom/’, ‘공 /koŋ/’, ‘일 /il/’, ‘난 /nan/’을 사용하였다.
| 조음 위치 | 평음 | 격음 / 경음 |
|---|---|---|
| 양순음 | 입 /ip/ | 잎 /ipʰ/ |
| 집/ʨ͡ip/ | 짚 /ʨ͡ipʰ/ | |
| 치조음 | 낟 /nat/ | 낱 /natʰ/ |
| 받- /pat-/ | 밭 /patʰ/ | |
| 연구개음 | 낙 /nak/ | 낚- /nakˈ-/ |
| 박 /pak/ | 밖 /pakˈ/ |
음향 실험은 두 가지 과제로 구성하였다. 첫 번째는 Q&A 과제로, 화면에 질문과 그림을 제시하면 실험 참가자가 해당 단어를 틀 문장에 삽입하여 대답하는 방식이다. 중화 환경의 틀 문장은 “___다.”로, 목표 자극의 종성 뒤에 자음 /t/가 후행하도록 설계하였다.
두 번째는 짧은 문장 낭독(읽기) 과제로, Q&A 과제보다 엄격하게 통제된 조건에서 실시하였다. 중화 환경의 틀 문장은 “난 ___다고 했다.”로 설계하였다. 읽기 과제에서는 보통 속도와 빠른 속도의 두 가지 발화 속도 조건을 두었다. 발화 속도는 250 ms 이상의 휴지, 비유창성, 머뭇거림 등을 포함하여 초당 음절수(syll/sec)로 산출하였다(Robb et al., 2004; Vaxelaire, 2007; Yaruss, 1997). 중화 환경에서 보통 속도는 평균 4.46 syll/sec, 빠른 속도는 5.15 syll/sec로, 발화 속도 간 차이는 0.69 syll/sec였다.
각 목표 자극은 10번씩 반복 발화하였다. Q&A 과제에서는 16명×16개 자극(12개의 목표 자극과 4개의 방해 자극)×10회=2,560개, 읽기 과제에서는 16명×16개 자극×10회 ×2개 속도(보통 속도와 빠른 속도)=5,120개로, 총 7,680개의 자료를 수집하였다.
음향 분석은 Praat(Boersma & Weenink, 2022)를 사용하였으며, 분절 후 스크립트를 통해 네 가지 시간적 매개변수를 자동으로 추출하였다.
이들 매개변수는 여러 언어의 종성 중화 연구에서 기저형의 후두 자질 차이를 반영하는 음성적 단서로 사용되어 왔다(1절 참조). 한국어에서도 Lee(2016)가 선행 모음 길이와 음향적 묵음 구간 길이에서, Cha & Sock(2025)이 선행 모음 길이, 종성 길이, VTT, 음향적 묵음 구간 길이에서 중화 환경에서의 유의미한 차이를 보고하였다. 이들 선행 연구에 따르면, 선행 모음 길이와 VTT는 평음이 격음·경음보다 길었으며, 종성 길이는 평음이 격음·경음보다 짧았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선행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의 네 가지 매개변수를 측정하였다.
첫째, 선행 모음 길이는 음절 초에 자음이 없는 경우 성대 진동 시작 시점부터 VTT 이전까지의 구간을 측정하였다. 음절 초에 자음이 있는 경우에는 포먼트(formant) 구조가 명확히 나타나는 시점부터 포먼트 구조가 소멸되는 시점까지를 측정하였다. 성문 진동 횟수가 1회 미만인 경우 무성 모음으로 간주하여 분석에서 제외하였다(Jun & Beckman, 1994; Torreira & Ernestus, 2010).
둘째, 종성 길이는 중화 환경에서 파열음의 정점(burst spike)의 유무에 따라 다르게 측정하였다. 파열음의 정점이 있는 경우, 선행 모음의 포먼트 구조가 소멸되는 시점부터 파열 시점까지를 측정하였고, 파열음의 정점이 없는 경우는 후행하는 자음의 VOT(voice onset time) 시작 시점까지를 종성 길이로 측정하였다.
셋째, VTT는 선행 모음의 포먼트 구조가 소멸되는 시점부터 성대 진동이 완전히 종료되는 시점까지의 구간으로 측정하였다(Abry et al., 1985; Agnello, 1975; Sock, 1998).
넷째, 음향적 묵음 구간 길이는 VTT가 종료되는 시점부터 종성의 길이와 마찬가지로 파열 정점의 유무에 따라 다르게 측정하였다.
공기역학 실험에서는 음향 실험에 참여한 16명 중 6명을 선발하여 진행하였다. 녹음은 2023년 2월부터 4월까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음성학·문헌학·언어학 연구소의 무향실에서 실시하였다. 공기역학 실험에서는 구강 호기 기류량과 구강 내 압력을 측정하였으며, 매 녹음 시작 전에 영점을 조정하였다. 실험 참가자는 공기역학 측정 장비의 마스크를 입에 최대한 밀착시킨 상태로 편안하게 앉아 발화하였으며, 전체 녹음 시간은 약 2시간이었다. 구강 내 압력 측정 시에는 양순 파열음만을 대상으로 하였는데, 이는 다른 자음의 경우 비강에 튜브를 삽관하여 위생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강 내 튜브의 길이는 혀의 접촉과 타액 축적으로 인한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1.5–2 cm로 하였다(Xiu, 2018). 자료 수집에는 프랑스 엑스-마르세유 대학교 말과 언어 연구소(Aix-Marseille Université, Laboratoire Parole et Langage)에서 개발한 EVA 2(Évaluation Vocale Assistée 2) 시스템과 Phonedit 소프트웨어(Ghio et al., 2012)를 사용하였다.
공기역학 실험에서는 읽기 과제만 실시하였다. 음향 실험과 동일한 틀 문장을 사용하였으며, 보통 속도와 빠른 속도의 두 가지 발화 속도로 음향 실험과 동일한 조건을 설정하였다. 중화 환경에서 보통 속도는 평균 3.7 syll/sec, 빠른 속도는 5.69 syll/sec로, 발화 속도 간의 차이는 1.99 syll/sec였다.
공기역학 실험에서는 공기역학 측정 장비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2–3시간 동안 동일한 자세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실험 참가자의 피로도를 고려하여 목표 자극의 수를 줄였다. 이에 따라 목표 자극을 12개에서 6개로 축소하였다(표 2). 각 목표 자극은 음향 실험과 마찬가지로 10회 반복 발화하였다. 구강 호기 기류량 측정에는 6명×10개(6개 목표 자극과 4개 방해 자극)×10회×2개 속도(보통 속도와 빠른 속도)=1,200개, 구강 내 압력 측정에서는 6명 × 6개 자극(2개 목표 자극과 4개 방해 자극)×10회×2개 속도(보통 속도와 빠른 속도)=720개로, 총 1,920개의 자료를 수집하였다.
| 조음 위치 | 평음 | 격음 / 경음 |
|---|---|---|
| 양순음 | 입 /ip/ | 잎 /ipʰ/ |
| 치조음 | 낟 /nat/ | 낱 /natʰ/ |
| 연구개음 | 낙 /nak/ | 낚- /nakˈ-/ |
공기역학 분석은 Phonedit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였으며, 측정값은 Excel에 기록하였다. 한국어 파열음의 초성 위치에서는 구강 내 압력이 평음보다 격음·경음에서 높게 실현되었으며, 구강 호기 기류량은 격음이 가장 높고, 경음이 가장 낮게 실현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1절 참조). 이러한 차이는 주로 성문 면적, 성문하 압력, 성도벽 긴장도 등 후두 및 성문상 기제의 차이에 기인하며(Cho et al., 2002; Dart, 1987), 특히 격음과 경음은 구강 내 압력이 유사하면서도 기류량에서 극적으로 분리되는데, 이는 두 범주가 질적으로 다른 후두 기제를 활용함을 의미한다(Cho et al., 2002). 한국어 파열음 종성 중화 환경에서도 기저형에 따른 공기역학적 차이가 나타나는지 검토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다음의 두 가지 매개변수를 측정하였다.
첫째, 구강 호기 기류량(dm3/s)은 종성 구간 동안의 폐에서 배출되는 공기의 양의 평균을 반영한다. 기류량은 개방 시점의 성문 면적에 의해 크게 좌우되며, 성문 면적이 넓을수록 기류량이 증가하고, 좁을수록 감소한다(Cho et al., 2002; Dart, 1987).
둘째, 구강 내 압력(hPa)은 양순 파열음에 한하여 폐쇄 구간 동안의 최대 구강 내 압력을 측정하였다. 구강 내 압력은 성문하 압력의 크기, 성문 임피던스, 성도벽 긴장도, 폐쇄 지속시간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Cho et al., 2002; Dart, 1987; Kim, 1965).
이 두 변수는 Phonedit의 자동 측정 기능을 이용하여 측정하였다.
지각 실험의 참가자는 26–43세의 서울 출생 서울 방언 화자로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36명의 청자가 참여하였다. 실험은 2024년 3월에 온라인으로 실시하였다. 실험 시작 전 참가자들에게 사용 중인 헤드폰 또는 이어폰의 정보를 기입하도록 하였다. 자료 수집에는 Psychopy(Peirce et al., 2019)와 Pavlovia(Bridges et al., 2020)를 사용하였으며, 휴식 시간을 포함한 전체 실험 시간은 약 1시간 30분이었다.
지각 실험을 위해 남성 화자 1명과 여성 화자 1명을 선정하여 14개의 자극(12개의 목표 자극과 2개의 방해 자극)을 10회씩 반복하여 총 280개의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 자료 중에서 자극 간 시간적, 주파수적 차이로 인한 편향을 방지하기 위해, 각 화자별로 선행 모음 길이, VTT, 기본 주파수(F0)의 중앙값에 해당하는 자극을 R을 이용하여 선정한 후 Praat 스크립트를 활용하여 추출하였다.
한국어 모어 청자는 중화 환경에서 한국어 파열음 종성의 기저형 대립은 표면형에서 실현되지 않으므로, AX 과제를 사용할 경우, “같다”는 응답에 편향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2AFC 과제를 사용하였다. 청자에게 최소 대립쌍 중 하나의 자극을 들려준 후 두 선택지 중 지각한 하나의 단어를 강제로 선택하도록 하였다. 응답 편향을 방지하기 위해 정답 선택지의 좌우 위치를 균등하게 배분하였으며(좌 6회, 우 6회), 자극 제시 후 500 ms가 지난 뒤에 선택지가 화면에 나타나도록 설정하였다. 또한, 응답의 일관성이 없는 실험 참가자를 제외하기 위해 양순 파열음 종성 /p/을 포함한 방해 자극 ‘압 /ap/’과 양순 비음 종성 /m/을 포함한 방해 자극 ‘암 /am/’을 추가하였다. 실험은 연습 시행과 두 개의 본 시행으로 구성하였으며, 각 시행 사이에 휴식을 두어 실험 참가자들의 피로를 방지하였다.
각 자극은 12회 반복 제시하여 36명×14개 자극(12개 목표 자극과 2개 방해 자극)×12회=6,048개의 반응 자료를 수집하였다.
본 연구에서 시간적 음향 변인과 공기역학적 변인의 분석에는 선형 혼합 효과 모형(linear mixed-effects model)을 사용하였다(Baayen et al., 2008; Pinheiro & Bates, 2000). 고정 효과(fixed effect)로는 최소 대립쌍의 음소를, 임의 효과(random effect)로는 실험 참가자를 설정하였다.
지각 변인의 분석에는 로지스틱 혼합 효과 모형(logistic mixed-effects model)을 사용하였다(Jaeger, 2008). 고정 효과로는 최소 대립쌍의 음소를, 임의 효과로는 실험 참가자를 설정하였다.
모형의 가정 충족 여부는 다음과 같이 검증하였다. 잔차의 정규성은 QQ-Plot과 히스토그램으로 확인하였으며, 왜도(skewness) 3 미만, 첨도(kurtosis) 8 미만을 정규 분포의 기준으로 삼았다(Kline, 2019). 또한, 잔차와 적합값의 산점도를 통해 등분산성을 확인하였다. 가정 위반 시에는 로그 변환을 적용하여 모형을 보정하였다.
통계 분석은 R(R Core Team, 2025)을 사용하였으며, lme4(Bates et al., 2023)와 lmerTest(Kuznetsova et al., 2017) 패키지로 혼합 효과 모형을 분석하였다. 그래프는 ggplot2 패키지로 작성하였다. 유의 수준은 p<.05를 기준으로 하였으며, *p<.05, **p<.01, ***p<.001으로 구분하여 표기하였다.
3. 결과
선행 모음 길이의 분석 결과는 표 3에서 제시하였다. 조음 위치에 따라 중화 양상이 다르게 나타났다. 양순음과 연구개음의 경우 과제 유형과 관계없이 평음과 격음·경음이 거의 동일한 길이로 실현되어 완전한 중화 양상을 보였다(p>.05). 반면, 치조음에서는 상이한 양상이 관찰되었다. Q&A에서 평음 /t/가 격음 /tʰ/보다 3.2 ms 길었으며(β=–3.05, t=–2.51, *p<.05), 빠른 속도로 읽기에서도 2.4 ms 유의미한 차이가 유지되었다(β=–2.38, t=–2.16, *p<.05). 이는 발화 속도가 증가하더라도 치조음에서 기저형의 흔적이 유지됨을 시사한다(그림 1).
종성 길이에서는 보다 복잡한 양상이 관찰되었다(표 3). 양순음과 치조음은 모든 과제에서 평음과 격음·경음 간 차이가 미미하여 완전한 중화에 가까운 양상을 보였다(p>.05). 주목할 점은 연구개음에서 나타났다(그림 2). Q&A에서는 평음 /k/가 경음 /kˈ/보다 10.2 ms 길었으나(β=–10.42, t=–2.04, *p<.05), 보통 속도로 읽기에서는 반대로 평음 /k/가 경음 /kˈ/보다 12.7 ms 더 짧게 실현되었다(β=12.78, t=3.23, **p<.01). 즉, 과제에 따라 차이의 방향이 역전되는 현상이 확인되었다. 빠른 속도로 읽기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소멸하여 두 집단이 유사하게 실현되었다(p>.05).
VTT의 분석 결과(표 3), 대부분의 조건에서 평음과 격음·경음이 유사한 수준으로 실현되었다. 양순음과 연구개음은 모두 과제 유형에서 두 집단 간 유의미한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p>.05). 치조음 역시 Q&A와 빠른 속도로 읽기에서는 집단 간 차이가 확인되지 않았으나(p>.05), 보통 속도로 읽기에서는 평음 /t/의 VTT가 격음 /tʰ/보다 1 ms 짧게 나타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였다(β=0.91, t=2.37, *p<.05). 다만, 1 ms의 차이는 물리적으로 매우 미미한 수준이므로 그 실질적 의미는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그림 3).
음향적 묵음 구간 길이에서도 종성 길이와 유사한 패턴이 관찰되었다(표 3). 양순음과 치조음은 과제와 무관하게 평음과 격음·경음 간 뚜렷한 차이 없이 중화된 양상을 보였다(p>.05). 주목할 만한 결과는 연구개음에서 나타났다(그림 4). Q&A에서는 평음 /k/의 음향적 묵음 구간 길이가 경음 /kˈ/ 보다 10.6 ms 길었으나(β=–10.79, t=–2.12, *p<.05), 보통 속도로 읽기에서는 반대로 경음 /kˈ/의 음향적 묵음 구간 길이가 평음 /k/보다 12 ms 더 길게 실현되었다(β=12.11, t=3.1, **p<.01). 종성 길이와 마찬가지로 과제에 따라 차이의 방향이 역전되는 양상이 확인되었지만, 빠른 속도로 읽기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미미하여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p>.05).
구강 호기 기류량의 분석 결과(표 4), 전반적으로 평음과 격음·경음 간 유의미한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 양순음과 연구개음은 발화 속도에 관계없이 두 집단이 유사한 수준으로 실현되어 통계적 유의수준에 도달하지 못하였다(p>.05). 치조음에서는 보통 속도로 읽기에서 p=.062로 유의수준에 근접하였으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고, 빠른 속도로 읽기에서도 차이는 미미하였다(p>.05). 이러한 결과는 구강 호기 기류량이 중화 환경에서 기저형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구강 내 압력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위생상의 이유로 양순음만 측정하였다(표 4). 흥미롭게도, 구강 호기 기류량과 상반된 결과가 나타났다(그림 5). 보통 속도로 읽기에서 격음 /pʰ/의 구강 내 압력이 평음 /p/보다 0.97 hPa 높게 실현되었으며(β=0.97, t=2.06, *p<.05), 빠른 속도로 읽기에서는 그 차이가 1.525 hPa로 더욱 두드러졌다(β=1.52, t=3.07, **p<.01). 이는 구강 내 압력이 중화 환경에서도 기저형의 차이를 민감하게 반영하는 지표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음향 및 공기역학적 실험에서 일부 유의미한 차이가 관찰된 것과 달리, 지각 실험에서는 상이한 결과가 나타났다(그림 6). 모든 조음 위치에서 평음과 격음·경음 간 평음 응답률의 유의미한 차이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양순음의 경우, 평음 /p/와 격음 /pʰ/ 모두 약 74%의 높은 평음 응답률을 보여 청자들이 두 자극을 평음 /p/로 지각하는 강한 경향이 확인되었다(β=0.06, SE=0.11, z=0.51, p=.613). 이와 반대로, 치조음에서는 평음 /t/와 격음 /tʰ/ 모두 약 27%의 낮은 평음 응답률을 보여 격음 /tʰ/ 방향으로 지각적 편향이 나타났다(β=–0.01, SE=0.11, z=–0.06, p=.954). 연구개음에서는 평음 /k/가 47.5%, 경음 /kˈ/가 51.7%로 우연 수준(50%)에 근접하여 청자들이 두 자극을 지각적으로 변별하지 못함을 보여주었다(β=0.17, SE=0.1, z=1.64, p=.102). 종합하면, 산출 단계에서 관찰된 음향적·공기역학적 미세 차이가 지각 단계에서는 변별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4. 논의
한국어 종성 장애음의 중화 현상은 오랫동안 음운론적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Kim & Jongman(1996)은 음향 및 지각 실험을 통해 완전한 중화를 주장한 반면, Lee(2016)는 일부 조건에서 불완전한 중화의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최근 Cha & Sock(2025)은 /aC/음절을 대상으로 한 음향 분석에서 파열음 종성의 불완전한 중화를 보고한 바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선행 연구를 확장하여, 한국어 종성 장애음 중 파열음에 초점을 맞추어 실제 단어를 대상으로 음향, 공기역학, 지각 실험을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어 파열음 종성의 중화가 완전한지, 불완전한지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음향 및 공기역학적 실험 결과, 한국어 파열음 종성의 중화 양상은 조음 위치, 과제 유형, 발화 속도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였다.
먼저, 조음 위치에 따른 음향 실험 결과를 2.1.3절에서 제시한 선행 연구의 결과와 비교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양순음은 선행 모음 길이, 종성 길이, VTT, 음향적 묵음 구간 길이 등 모든 매개변수에서 한국어 파열음 평음 /p/와 격음 /pʰ/ 간 유의미한 차이가 관찰되지 않아 완전한 중화 양상을 보였다. 이는 Kim & Jongman(1996)이 치조 장애음의 조음 방법 중화에서 보고한 완전한 중화와 유사한 양상이다. 반면, 치조음에서는 선행 모음 길이와 VTT에서 부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확인되었다. 선행 모음 길이의 경우, 예측대로 Q&A에서 한국어 치조 평음 /t/가 격음 /tʰ/보다 3.2 ms, 빠른 속도로 읽기에서도 2.4 ms 길게 실현되어, 선행 연구(Cha & Sock, 2025; Lee, 2016)와 같은 양상이 나타났다. VTT의 경우, 보통 속도로 읽기에서 /t/가 /tʰ/보다 약 1 ms 짧게 실현되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으나, 이는 Cha & Sock(2025)의 연구 결과와 반대의 결과이다. 다만, 1 ms의 차이는 물리적으로 매우 미미한 수준이므로 그 실질적 의미는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화 속도가 증가하더라도 선행 모음 길이는 차이가 소멸하지 않았다는 점은 치조음에서 기저형의 흔적이 발화 조건에 관계없이 일정 부분 보존됨을 시사한다. 연구개음에서는 종성 길이와 음향적 묵음 구간 길이에서 과제 유형에 따라 상반된 결과가 나타났다. 종성 길이의 경우, Q&A에서는 Cha & Sock(2025)의 연구와 반대로 한국어 파열음 평음 /k/가 경음 /kˈ/보다 10.6 ms 길게 실현된 반면, 보통 속도로 읽기에서는 오히려 이들의 결과와 일치하여 /kˈ/가 /k/보다 12 ms 길게 실현되었다. 이처럼 과제에 따라 음향적 매개변수의 차이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 현상에 대해서는 4.2절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공기역학적 실험 결과, 구강 호기 기류량에서는 모든 조음 위치에서 평음과 격음·경음 간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구강 내 압력에서는 다른 양상이 관찰되었다. 한국어 양순음 격음 /pʰ/가 평음 /p/보다 보통 속도로 읽기에서는 0.97 hPa, 빠른 속도로 읽기에서는 1.525 hPa로 유의미하게 높은 압력으로 실현되었다. 이는 초성 위치에서 격음의 구강 내 압력이 평음보다 높게 실현된다는 선행 연구(Cho et al., 2002; Choi & Choi, 2014; Kim, 1965)의 결과와 일치하는 양상으로, 음향적으로 완전한 중화를 보이는 양순음조차 공기역학적 수준에서는 기저형의 흔적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각 실험 결과, 산출에서 관찰된 음향적·공기역학적 차이와 달리, 모든 조음 위치에서 평음과 격음·경음 간 평음 응답률의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즉, 한국어 모어 청자들은 중화 환경에서 두 범주를 지각적으로 변별하지 못하였다. 이는 Kim & Jongman(1996)과 Lee(2016)의 지각 실험 결과와도 일치한다. 다만, 조음 위치에 따라 응답 편향의 방향이 달랐다. 한국어 양순음에서는 평음 /p/와 격음 /pʰ/ 모두 약 74%의 높은 평음 방향으로 강한 편향이 나타난 반면, 치조음에서는 평음 /t/와 격음 /tʰ/ 모두 약 27%의 낮은 평음 응답률을 보여 격음 방향으로 편향되었다. 연구개음에서는 평음 /k/가 47.5%, 경음 /kˈ/가 51.7%로 우연 수준인 50%에 근접하였다. 세 조음 위치 모두 평음과 격음·경음을 변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나, 편향의 방향이 상이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편향의 원인으로는 어휘 빈도, 철자 지식, 또는 개별 자극의 음향적 특성 등이 고려될 수 있으나, 본 연구의 범위를 넘어서므로 후속 연구에서 규명할 필요가 있다.
종합하면, 산출에서는 VTT, 종성 길이, 구강 내 압력 등 일부 매개변수에서 평음과 경음·격음 간 유의미한 하위음소적 차이가 관찰된 반면, 지각에서는 모든 조음 위치에서 청자가 두 범주를 변별하지 못하였다. 서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Dinnsen(1985)은 산출과 지각에서의 차이 유무에 따라 중화를 표준적 중화(산출·지각 모두 차이가 없음), 제한적 중화(산출 차이가 있음; 지각적 변별 없음), 비중화(산출·지각 모두 차이가 있음), 불가능한 중화(산출 차이는 없음; 지각 변별 있음)로 분류한 바 있다. 본 연구의 결과는 산출에서는 미세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지각에서는 변별되지 않으므로, 이는 ‘제한적 중화(limited neutralization)’에 해당한다.
4.1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 연구에서는 Q&A보다 읽기에서, 빠른 속도보다 보통 속도에서 더 빈번하게 불완전한 중화가 관찰되었다. 또한, 연구개음에서는 과제에 따라 음향적 매개변수의 차이가 다르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해석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두 가지 이론적 틀을 활용하고자 한다. 첫째, Lindblom(1990)의 과잉 조음과 과소 조음(hyper- and hypo-articulation, H&H) 이론을 통해 과제 유형과 발화 속도에 따른 중화 양상의 변이를 설명한다. 즉, 어떤 조건에서 불완전한 중화가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지를 해석하는 데 이 이론을 적용한다. 둘째, Sock(1998)의 생존 가능성 이론(Viability Theory; Fr Théorie de la viabilité)을 통해 H&H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 즉 산출에서 관찰된 미세한 차이가 지각에서 변별되지 않는 현상과, 빠른 속도에서 공기역학적 차이가 오히려 증가하거나 특정 매개변수의 차이가 발화 조건에 관계없이 유지되는 현상을 보완적으로 해석한다.
H&H 이론에 따르면, 화자는 청자의 이해도와 조음 노력 간의 균형을 고려하여 발화를 조절한다. 명확한 소통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과잉 조음이, 문맥적 단서가 충분한 상황에서는 과소
조음이 나타난다. 본 연구에서 Q&A보다 읽기에서 더 많은 유의미한 차이가 관찰된 것은 H&H 이론의 예측과 부합한다. Q&A에서는 화자가 질문에 대한 응답에 집중하며 동음이의어 간의 차별화를 의식하지 않으므로, 과소 조음이 기본 전략으로 채택된다. 반면, 읽기에서는 철자 정보가 시각적으로 제시되어 화자가 기저형의 차이를 의식하게 되고, 이에 따라 과잉 조음 전략을 채택하여 음소 간 대립을 명확히 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연구개음에서 과제에 따라 음향적 매개변수의 차이 양상이 상이하게 나타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보통 속도보다 빠른 속도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전반적으로 감소한 것 역시 발화 속도 증가에 따른 과소 조음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H&H 이론만으로는 본 연구의 모든 결과를 설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양순음의 경우 음향적으로 완전한 중화를 보이지만 공기역학적 수준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관찰되었다. 또한, 치조음에서는 빠른 발화 속도에서도 선행 모음 길이의 차이가 유지되었다. H&H 이론에 따르면 빠른 속도에서 과소 조음이 유도되어 음소 간 차이가 줄어들어야 하지만, 본 연구의 결과는 이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에 앞서 제시한 바와 같이, 생존 가능성 이론을 통해 이러한 결과를 보완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생존 가능성 이론은 국내 학계에 다소 생소한 개념이므로, 논의에 앞서 그 이론적 배경을 간략히 짚어보고자 한다. 생존 가능성 이론은 Aubin(1991)이 제안한 수학적 개념인 ‘생존 가능성’을 말 산출 및 지각 영역에 적용한 것이다. Aubin(1991)에 따르면, 동적 체계는 외부 환경의 변화나 내부적 교란에 직면하더라도 특정 범위, 즉 ‘생존 가능 영역’ 내에서 체계의 핵심적 기능을 유지하려는 속성을 지닌다. Sock(1998)은 이 개념을 산출-지각 영역에 적용하여, 규범적 논리(prescriptive)가 아닌 금지적(proscriptive) 논리를 제안하였다. 규범적 논리에서는 명시적으로 허용된 것만 허용되지만, 금지적 논리에서는 명시적으로 금지된 것만 금지되고 나머지는 허용된다. 즉, 조음 전략이나 지각 과정이 체계의 생존 가능성이나 안전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한 언어적으로 생존 가능한 것으로 간주된다. Sock & Vaxelaire(2001)에 따르면, 말 산출-지각 체계는 내·외적 교란에 직면할 수 있다. 첫째, 내적 교란은 발화 속도의 변화나 병리적 제약 등 체계 내부에서 발생하는 요인이다. 둘째, 외적 교란은 소음 환경 등 체계 외부의 환경적 요인이다. 화자는 이러한 교란에 직면했을 때 음운 대립과 메시지의 명료성을 유지하기 위해 보상과 재조정 전략을 채택하며, 이는 보수적 변화(conservative change) 또는 혁신적 변화(innovative change)의 형태로 나타난다. 보수적 변화란 절대적인 음향 매개변수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음운 대립을 유지하는 상대적 전략이 변하지 않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발화 속도가 빨라지면 자음의 길이가 짧아지지만, 유성음 /b/과 무성음 /p/ 간의 상대적 차이는 유지된다. 반면, 혁신적 변화는 교란에 대응하여 새로운 전략을 채택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Bechet(2011)에 따르면 구개열1) 화자는 동일한 조음-음향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상 화자보다 더 넓은 범위의 조음 전략을 채택한다.
본 연구의 결과는 생존 가능성 이론의 틀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중화 환경에서 한국어 파열음 종성의 산출 시, 한국어 모어 화자들은 시각적으로 제시된 정보와 한국어 음운 규칙에 의존하여 내적 교란에 직면하게 된다. 화자들은 이러한 내적 교란에 대응하는 혁신적 변화를 채택한다. 이러한 교란은 항상 완전한 중화를 유도하지 않으며, 말 산출의 생존 가능 영역 내에서 음향 및 공기역학적 매개변수에서 유의미하거나 미미한 차이가 나타난다. 앞서 언급한 양순음의 구강 내 압력 차이와 치조음의 선행 모음 길이 차이가 빠른 속도에서도 유지되는 현상은 Sock & Vaxelaire(2001)가 제안한 보수적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발화 속도라는 내적 교란에 직면하더라도 기저형 간의 상대적 차이가 생존 가능 영역 내에서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발화 속도와 공기역학적 매개변수의 관계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를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
따라서 화자들은 산출 수준에서 파열음 종성 최소 대립쌍 간의 구별 또는 중화를 유지한다. 한편, 지각적 수준에서 한국어 모어 청자들은 조음 위치와 조음 방법에 관계없이 최소 대립쌍의 기저형을 동일하게 지각하여 완전한 중화를 보인다. 이는 한국어 음운 체계에서 종성 장애음이 중화된다는 제약으로 인해 청자에게 지각적으로 대안적인 범주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출 단계에서 유의미한 음향-공기역학적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청자는 이를 변별하지 못하고 동일한 소리로 지각하게 된다. 다만, 실제 의사소통 상황에서는 음운론적·언어적 문맥이 지각적 생존 가능 영역을 제공하여, 불완전한 중화에도 불구하고 언어적 메시지의 이해가 가능하다.
한편, 본 연구에서 조음 위치에 따라 중화 양상이 비일관적으로 나타난 점에 대해 추가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양순음은 모든 음향적 매개변수에서 완전한 중화를 보인 반면, 치조음에서는 선행 모음 길이와 VTT에서, 연구개음에서는 종성 길이와 음향적 묵음 구간 길이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관찰되었다. 이러한 비일관성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
첫째, 조음 위치에 따라 폐쇄의 기제가 상이하다(Ladefoged & Maddieson, 1996). 양순음은 위·아래 입술의 접촉으로 비교적 단순하고 균일한 폐쇄가 이루어지므로, 후두 자질의 차이가 시간적 매개 변수에 반영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면, 치조음과 연구개음은 설첨 또는 설배와 조음점의 접촉으로 폐쇄가 형성되며, 접촉 면적이나 폐쇄 위치의 가변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이러한 조음적 특성이 후두 자질의 대립이 음향 매개변수에 반영되는 정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본 연구에서는 양순음과 치조음에서 평음·격음 대립을 연구개음에서는 평음·경음 대립을 비교하였다. 이는 한국어 종성의 최소 대립쌍의 언어 내적 제약에 기인하지만, 격음과 경음은 서로 다른 후두 자질[(확장 성문성; Spread glottis) vs. (협착 성문성; Constricted glottis)]을 가지므로 조음 위치 간 결과의 비일관성이 조음 위치 자체의 효과인지, 비교 대상인 후두 범주의 차이에 기인하는지를 분리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1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Cha & Sock(2025)에서는 /aC/ 음절을 대상으로 연구개 평음·격음·경음을 모두 비교하여 음향적 분석을 실시한 바 있으나, 공기역학적 분석과 지각 실험은 수행되지 않았다.
따라서 후속 연구에서는 모든 조음 위치에서 세 발성 유형을 체계적으로 비교하되, 공기역학적·지각적 차원까지 포함한 종합적 검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무의미 단어(pseudoword)를 활용하여 평음·격음 및 평음·경음 대립을 모든 조음 위치에서 통제된 조건으로 비교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5. 결론
본 연구는 한국어 파열음 종성의 중화 현상을 음향, 공기역학, 지각의 세 차원에서 분석하였다. 음향 실험 결과, 양순음은 모든 매개변수에서 완전한 중화를 보인 반면, 치조음과 연구개음에서는 일부 매개변수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관찰되었다. 공기역학적 실험 결과, 양순음은 구강 내 압력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 음향적으로 완전한 중화를 보이는 양순음조차 공기역학적 수준에서는 기저형의 흔적을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반면, 지각 실험에서는 모든 조음 위치에서 한국어 모어 청자들이 평음과 격음·경음을 변별하지 못하여 완전한 중화가 관찰되었다. 이러한 산출과 지각의 불일치는 Dinnsen(1985)의 제한적 중화 개념과 일치하며, H&H 이론과 생존 가능성 이론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본 연구는 기존 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공기역학적 데이터를 통합하여 중화 현상을 다각적으로 분석하였으며, 국내 학계에 널리 소개되지 않았던 생존 가능성 이론을 새롭게 적용하여 분석의 지평을 넓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본 연구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첫째, 구강 내 압력 측정이 양순음에 한정되었다. 둘째, 양순음과 치조음에서는 평음·격음 대립을 연구개음에서는 평음·경음 대립을 비교하였으므로, 조음 위치 간 결과의 차이가 조음 위치 자체의 효과인지, 비교되는 후두 범주 차이에 기인하는 것인지를 분리하기 어렵다. 셋째, 지각 실험에서 나타난 조음 위치별 편향의 원인을 충분히 규명하지 못한 점은 한계로 남는다. 후속 연구에서는 다양한 조음 위치에 대한 공기역학적 검증과 동일한 후두 대립 조건에서의 조음 위치 간 비교, 그리고 지각적 편향 요인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